-
로저 달트리 자서전 조각 번역 3번역 2020. 6. 12. 04:52
이번 분량은 후즈넥스트 앨범 작업(=라이프하우스)을 하던 1970년대 초부터 콰드로페니아 투어까지입니다
원래 피트는 곡을 사전에 주고 연습하게 하는 스타일이 아니래요 로저 생각에는 재즈 색소포니스트인 아버지랑 가수인 어머니 영향인 것 같다고. (그런 쪽은 악보를 보고 바로 연주하게 하니까) 그런데 이례적으로 후즈 넥스트 때는 라이프하우스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미리 공연을 해볼 기회가 많았고 곡을 완전히 자기 걸로 만들 시간이 충분했기 때문에 그게 스튜디오 녹음의 퀄리티를 향상시키는 데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고 합니다
-
라이프하우스 프로젝트 작업 이야기와 피트의 성질머리
~~라이프하우스에 대한 얘기
지금 들으면 이것은 상당히 젠체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럼 1971년에는 어떻게 보였겠는가? 게다가 이 내용이 명쾌하게 설명되어 제시된 것도 아니었다. 피트는 줄거리를 설명할 때면 항상 뜬구름 잡는 식이었는데 그런 점은 록 음악을 만들 때는 괜찮지만 영화를 만들 때는 좋지 않았다. 라이프하우스 작업은 지적인 쳇바퀴 돌리기 같았다. 상황은 완전히 개판이었다.
나는 모든 것을 하나의 제대로 된 대본으로 정리해 보려고 했지만 이것은 비할데없이 어려운 작업이었다. 피트가 말하려고 하는 것은 이해하고 있었다. 우리가 모든 것에 담긴 의미를 깨닫고 더 높은 무언가를 찾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하나의 음악적 음표(note)라는 것이다. 나는 이해했다. 그렇지만 그걸 가지고 어떻게 영화를 만든단 말인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가지고 어떻게 영화를 만드냐고?
이야기를 나눌 때마다 우리는 항상 영화에 대해 이야기했고 그것은 쳇바퀴돌리는 것처럼 진전이 없었다. 우리는 트랙 레코드사에서, 내 집에서, 피트의 집에서 탁자에 모여 앉았다. 키트와 크리스도 그 자리에 있었고 몇 시간이고 흘러만 갔다. 키스와 존은 시간이 더 빨리 가게 만들기 위해 술을 마시기 시작한다. 특히나 길었던 어느 저녁에, 키스는 그냥 옷을 벗어던지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물구나무를 서서 테이블에다가 전시했다.
나는 좀 더 건설적으로 대처하려고 노력했다. 나는 항상 이렇게 말하곤 했다. '곡은 나와 있잖아. 곡 작업을 해보자.' 그렇지만 피트에게 있어서 그 모든 것은 하나로 간주되는 것이었다. 영화와 앨범이 하나의 프로젝트로서-총체적 멀티미디어 체험이었던 것이다. 우리에겐 너무 고차원적이었고 말이다.
전에도 말한 적 있지만, 그리고 최대한 좋게 표현하는 것이지만 피트와 대화하는 것은 한 쌍의 광대 신발을 신고 지뢰밭을 건너는 것과 비슷하다. 아, 눈도 가려야지. 그가 뭔가에 꽂혀있는데 다른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면 그는 지적으로 잔혹해진다. 그의 절망은 종종 심술궂음으로 표출된다. 그는 아름답고 상냥한 면을 가지고 있고 그게 대부분의 경우에 보게 되는 면이긴 하지만 또한 갑작스레 튀어나오곤 하는 다른 면을 가지고 있다. 따뜻한 마음을 가진 전갈 같은 것이다. 대화가 얼마나 행복하게 흘러가고 있건 간에 당신은 항상 꼬리에 있는 가시를 의식하고 있어야 한다.(p.182~183)
-
피트 그 타입아니냐 아니 이걸 왜 못하지? 이걸 어떻게 더 쉽게 설명해?
너 과외하지 마라
-
내가 마이크를 돌리기 시작한 것은 자아표출 행위가 아니었다. 단지 악기 솔로 도중에 뭘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시작한 것뿐이었다. 시작은 Herman's Hermits 투어에서의 소박한 동작이었다. 그 투어에서부터 세트리스트에 미니오페라가 포함되었는데 나는 이 긴 음악이 연주되는 동안 뭔가 활력을 부여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무대 중간에 마이크를 붙든 채로 붙박여 있곤 했는데 그건 좀 지루해 보이지 않는가. 내가 무슨 안무를 하든 한 팔로 할 수밖에 없었고 그렇다고 믹재거처럼 춤출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쉬는 타이밍이 되었을 때 약간 휘둘러 보았던 것이다. 몇 달이 지나면서 그것은 커지고 또 커졌다. 그리고 그때부터 피트는 점프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는 더 돌렸다. 그러면 피트는 더 뛰었다.
존은 그냥 제자리에 덤덤하게 서있었다. 키스는 언제나 난리를 피웠다. 하지만 피트와 나는 말하자면 춤추는 군비 경쟁 같은 것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안무처럼 짜인 것은 아니었다. 이 모든 것은 음악으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아니면 아마 우리의 자아표출에서 나왔거나.
항상 마이크를 잡는 데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60년대에야 완벽한 성공률을 보장했지만 요즘에 들어서는 내 시력이 별로 좋질 못해서 복불복이다. 마이크를 놓치면 내 다리에 맞거나 고간에 맞거나 그러는데 존나 아프다. 고음이 더 잘 나오게 해주는 것 같긴 하다.
사람을 일부러 친 적은 한 번밖에 없다. 척베리 공연에서의 한 사내자식이었는데 걔는 그럴 만했다. 의도하지 않은 경우는 장비 불량으로 인한 일이었다. 몇 번인가 마이크가 연결부만 남기고 사라진 적 있는데 정말 무서운 일이었다. 그냥 사라져 버렸다. 어디론가 날아가버린 듯한데 만약 누군가의 머리에 맞았다면 아마 좋지 않은 결과를 낳았을 것이다. 다음에 우리 공연 앞쪽 열에 서게 된다면 이것에 대해 생각하지는 말기를 바란다.
따로 연습을 하는 것은 아니다. 공연 전에 준비운동 격으로 몇 번 휘둘러 보기는 한다. 마이크가 꽤 묵직하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힘을 써서 돌려야 하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휘둘러보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항상 무대 위에서 모두가 어디에 있는지 어렴풋이라도 알고 있어야 한다. 안전거리도 알고 있어야 한다. 가엾은 Pino Palladino는 지난 오랜 세월 동안 우리의 베이스 연주자였는데 처음에는 상당히 겁먹었었다. 지금은 안전하다는 걸 알기 때문에 아무렇지 않아 한다. 그는 이제 거의 움찔하지도 않고 서있을 수 있다.
멤버들도 분명히 처음에는 불안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조금 지나서는 나를 신뢰하게 되었다. 피트는 확실히 그렇다. 그리고 여기서 확실히 해둬야 할 것은, 나는 절대 피트를 마이크로 친 적은 없다는 것이다. 아직 그럴 만한 시간이 좀 있긴 하지만 걔가 날 그럴 만큼이나 빡치게 한 적은 없다. 그럴 거면 차라리 라이프하우스 작업을 하던 몇 달 동안 걔를 때려눕히는 게 더 쉬웠을 것이다. 아니면 우리가 다퉜던 그 많은 순간들에 그러든가. (...)
-
그렇지 마이크로 치느니 주먹으로 치는 게 빠르지
-
won't get fooled again의 예!!!!!!부분
대충 햄프셔에 있는 어디서 녹음했다는 얘기
피트의 데모를 들었는데 드럼 리프 다음 다시 보컬이 들어오는 시점에 바로 그것이 있었다. 조심스럽고, 재즈스럽고, 부드러운 'yeah'. 마치 어디 한번 해봐, 하는 것처럼.
나는 곡을 알고 있었다. 거기에 담긴 것이 분노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격심한 분노 말이다. 나는 느낀 대로 분노의 절규를 토했다. 머리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다. 심장에서 나온 것이었다.
모두는 부엌에서 저녁을 먹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끔찍한 비명을 들었고 밴드의 다른 멤버들은 틀림없이 보컬이 죽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키스는 내가 괜찮은지 확인하기 위해서 문 너머로 고개를 내밀었다.
-
여기서부터는 콰드로페니아 투어 때의 이야기인데요, 이때부터 배킹테이프를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거기서 많은 애로사항이 꽃피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피트 자서전에서는 후즈넥스트 투어부터 배킹테이프를 썼다는데 말이 다르네요. 아무튼 그래서 테이프 머신의 기술적인 문제와 미리 녹음된 테이프에 맞춰서 라이브를 해야 하는 등의 문제로 투어가 만족스럽게 흘러가지 않았나 봅니다.
콰드로페니아 앨범 녹음 자체도 여러가지 어려운 점이 많았다고 하네요. 피트는 콰드로페니아 앨범에서 주인공 지미의 분열된 자아를 구현하기 위해 그야말로 '콰드로페닉'한 사운드 시스템을 구축하려고 했는데요, 그래서 스튜디오를 지었는데 그 스튜디오에서 녹음하고 재생했을 때는 굉장히 풍부했던 사운드가 다른 스튜디오에서 들어보면 납작하게 들렸다고 합니다. 아무튼 그렇게 압박과 긴장감이 쌓여가다가 그 유명한 기타리스트 기절 사건이 일어나죠. 전후 사정을 보면 마냥 웃을 일은 아닌데 어쨌든 너무 웃깁니다.
-
그 유명한 기절일화
~~~더후의 무대 앰프가 점점 커지면서 보컬을 들을 수가 없었다는 이야기
미쳐돌아가는 시간이었다. 완전히 미쳐돌아갔다. 콰드로페니아 투어를 시작하기도 전에 우리는 발버둥치고 있었다. 셰퍼튼에서 한 리허설은 소모적이었다. 거기서 피트가 바닥에 기절해 뻗고 나는 비명을 지르며 구급차를 부르게 되는 싸움이 벌어진다. 리허설이 반쯤 지나갔을 때 나는 촬영 팀에게 완전히 질려있었다. 그들은 MCA를 위한 홍보영상을 촬영하기로 되어있었는데 카메라를 켜려는 시늉도 하고 있지 않았다. '대체 촬영은 언제 시작할 건데요?' 내가 물었다. '내 목소리가 나가면? 이거 힘들다고요. 두 번은 안 할 거예요.' 퍽 합리적이지 않은가?
그때 브랜디에 취한 피트가 폭죽처럼 발사되었다. 그는 내 얼굴에다 대고 을러댔다. '하라면 씨발 하라는 대로 해.' 그가 빈정댔다. 나에게 그런 식으로 말하면 안되는 거였지만 어쨌든 나는 아직 참고 있었다. 로드매니저들은 내가 어디까지 참을 수 있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즉시 행동에 들어가 나를 붙들었다.
'그새끼 놔줘' 피트가 고함을 질렀다. '저 좆만한 새끼 내가 죽여버릴 거니까.' 그들이 나를 놔줬다.
내 기억으로는 다음 순간 그가 나에게 24파운드짜리 레스폴 기타를 휘둘렀다. 그것은 내 귀를 지나쳐 어깨를 스쳤다. 더후가 훨씬 이른 종결을 맞을 뻔한 순간이었다. 나는 아직 대응하지는 않았었지만 상당히 빡치기 시작했다. 마침내 그가 나를 좆만한 새끼라고 부른 것이다.
마침내 거의 십년처럼 느껴진 Peaceful Perce가 있은 다음, 그리고 또 한번의 레프트훅이 거의 적중할 뻔한 다음 나는 턱에 먹이는 어퍼컷 한방으로 응답했다. 피트는 도끼로 맞은 것처럼 뒤로 넘어갔다. 그리고 그는 무대에 머리를 부딪히며 쓰러졌다. 나는 내가 걔를 죽인 줄 알았다.
상황을 조금 더 안좋게 만든 것은 우리 퍼블리스트 Keith Altham이 그 자리에 새로 계약한 레코드 컴퍼니의 미국인 매니지 디렉터를 대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거물급 인사가 그의 대형 계약상대를 목도한 첫 광경은 리드 보컬리스트가 리드 기타리스트를 기절시키는 모습이었다.
'신이시여.' 공포에 질린 MD가 말했다. '항상..항상 이런가요?'
'아뇨.' Keith가 말했다. '오늘은 좀 낫네요.'
나는 구급차의 뒤에 동승해서 피트의 손을 부여잡고 죄책감에 죽어가고 있었다. 사실 공격당한 쪽은 나였는데 결국은 어떻게든 내가 책임감을 느끼게 된 것이다. Acton의 운동장으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감사하게도 피트는 살아남았다. 하지만 나는 내 여생동안 걔가 나 때문에 자기 머리가 빠졌다고 비난하는 것을 들어야 했다. 오늘날까지도 걔는 내가 먼저 시작한 일이라고 믿는 것 같다. 걔는 종종 아주 선택적인 기억력을 자랑하니까 말이다.
-
1. 빡친 포인트가 자기를 'little' fucker라고 부른 거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2. Peaceful Perce가 뭔가 해서 검색해봤는데 로저가 쫓겨난 후로 자기 성질을 다스리게 된 데 대한 별명 같은 건가 봐요 구글링하니까 더후에 관한 다른 책이 나오네염. 로저가 셰퍼드부시의 Percy Road 출신이라나
-
이 이후에 투어에서 테이프를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여러가지로 잘 안돼서 피트가 빡치면 담당자한테 테이프며 뭐며 존나 던졌다고...ㅋㅋㅋㅋㅋ 그분이 로저 다음으로 지리적으로 피트한테서 제일 가까워서... 수고가 많으십니다....아무튼 Newcastle에서 그분한테 피트가 테이프 머신 던진 다음날 신문에 헤드라인이 떴다네요.
The Who-A Ridiculous Display of Unwarranted Violence
드러머 키스 문의 헤드폰에 문제가 생긴 후에 잠열이 폭발했다. 그는 헤드폰을 고치려고 애쓰고 있는 사운드 엔지니어에게 드럼스틱을 던졌다. 그리고 타운센드가 끼어들었다. 그는 배킹 테이프를 뜯어발기더니 장비를 사이드 커튼 너머로 집어던져버렸다. 밴드의 다른 세 멤버들-리드 싱어 로저 달트리, 기타리스트 존 엔트위슬, 그리고 드러머 키스문-은 그냥 보고만 있었다. 내 의견을 덧붙이자면 이것은 지극히 유아적인 대언론용 퍼포먼스였다. 그들을 우상으로 삼아 일거수일투족을 모방하려고 드는 수많은 젊은이들에게 안좋은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있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다른 한편으로 그들은 언제나처럼 음악적으로는 완전무결했다.
내가 제아무리 훌륭한 언론이라고 해도 우리를 제대로 바라보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그들에게는 우리가 '음악적으로는 무결한' 것처럼 보였을지 모르겠지만 우리에겐, 특히나 피트에게는 하찮은 테이프 머신이 일으키는 좁쌀만 한 결함이라도 길에 설치된 거대한 장애물처럼 느껴졌다.
언론용 퍼포먼스 같은 게 아니었다. 전혀 비슷하지도 않다. 그것은 순수하게 환멸이 끓어넘친 현장이었다.(...)
(p.218~219)
어째 갈수록 피트의 인성대파티가 되는 느낌인데
오역, 의역에 주의하세요. 오역, 오타 알려주시면 감사합니다 대신 번역해주시면 더 감사합니다
다음 번역글은 아마 토미 영화촬영할 때 로저가 데굴데굴 구르는 이야기가 될듯
'번역' 카테고리의 다른 글
피트 자서전 조각 번역 3 (0) 2020.12.12 피트 자서전 조각 번역 2 (0) 2020.06.11 로저 달트리 자서전 조각2 (0) 2020.05.20 로저 달트리 자서전 조각 (0) 2020.04.24 피트자서전 조각 (0) 2020.04.24